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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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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네 살쯤 되었을 무렵, 나는 직원 서른 명쯤 되는 작은 회사에서 전략기획팀장을 맡고 있었다.
나는 매우 야무지고 단단한 “직장생활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과의 제휴를 위한 제안서를 쓰고, 신규 사업 전략을 세우고, 매주 두세 번은 발표를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를 재우고, 다시 노트북을 펼쳤다.
일은 끝나지 않았고,나는 늘 회사 걱정을 안고 잠들었다.

 

때가되어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놀라운 소식이 있었다. 

아이의 하원시간이 3-4시였던 것이다. 네 시에 집에 온다고? 

퇴근시간에 맞춰서 와줄순 없나…


물론 친정엄마도 있고,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도 있지만…
무언가 꺼림칙했다. 

 

‘아이랑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나?’

그 생각이 한 번 들어오고 나니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만약 오후 네 시부터 여덟 시까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다.


이미 나는 누구보다 회사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고, 더 일찍 출근하면 되잖아.
예를 들어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일하고, 4시에 퇴근한 다음,
밤에 아이 재우고 사무실에 다시 나가면 된다.

나는 정말 혼자 너무 뿌듯했다.
“이거 완전 혁신 아니야?” 속으로 생각하면서 기뻤다.

마침 회사의 대표님은 나와 평소 생각이 잘 맞던 분이었기에,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분명히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을 함께 먹는 편안한 자리에서 대표님께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데요, 퇴근 시간을 조금 조정해도 될까요?
제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일하고, 4시에 퇴근한 다음, 밤에 다시 사무실에 나와 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요.
결국 근무 시간은 그대로거든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표님은 눈썹을 찌푸렸다.

“안 돼.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아.”

말끝은 단호했다.  

 

“아...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 이후 머릿속은 복잡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뭐지?


아이와 함께하는 ‘딱 네 시의 시간’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냈고, 진심으로 회사를 위해 고민했는데.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Work and Life Balance'라는 단어가 한참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Balance’는 대체 누구를 위한 균형이었을까.
아이를 낳은 여성도, 그 균형 안에 포함되는 걸까?

 

나는 내 삶이
‘육아 때문에 배제당했다’,
‘일에서 성취하지 못했다’ 라는 식으로 남는 걸 원하지 않았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둘 다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한쪽을 내려놔야 했다면,
그건 내 아이와 보내는 **‘네 시의 시간’**이었고, 사회는 그냥 막연히 그걸 강조하는것 같았다. 

아니면 반대로 그걸 가지려면 일을 포기해야 하는,

말그대로 “패배”하고 집으로 귀환해야 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 적어도 4시간은 내어서 내가 키우고 싶다’는 단순한 진심.

엄마 혹은 여성이어서 아니라, 그 아이를 존재하게 한 두 사람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 리더십을 내가 갖고 싶었다.

(물론 남편이 그 리더십을 가져도 훌륭하게 해냈을거라고 생각한다.)

 

며칠 뒤, 나는 사직서를 냈다. 후련하지 않고, 허무했다. 

내가 없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이후로 회사는 성장하기까지 했다.

(사실…아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없어도 잘 자랄 것이다. 그때 허무함이 이와 비슷할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나는 일보 후퇴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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